개발을 잘하더라도 회사가 망할 수 있지만 영업이 강한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영업을 잘하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영업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고 용역을 수주해야 회사가 돈을 벌 수있으니 그런거도 같다. 하지만 영업력이 강하다거나 영업을 잘한다는 말이 정확히 무언지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있다. 여기 영업팀이 긍정의 탈을 쓰고 일하고 있다.
긍정의 탈은 착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영업팀이 잘나가기위선 개발팀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한다. 수주를 하려면 한마디로 질러버려야 한다. 뻥카를 날려야 한다. 개발 될 수 있는지 아닌지 따질 여유는 없다. 고객이 원한다면, 경쟁사가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질러버려야 한다. 일단 고객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다음이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나 없냐 고객과 개발팀을 오가며 조율하는건 에너지 소모고 시간 낭비다. 그런 다고 더 잘될꺼라는 보장은 없다. 영업팀에게 개발팀은 '어렵다'는 말만 하는 조직이다. 개발 팀 사정봐줄 것 없이 질러야 한다.
그러다 계약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프로젝트가 시작할땐 확실한게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되지 않을까? 일단 수주해서 계약을 했으니 영업팀의 역활은 다한 것이다. 영업목표도 챙겼으니 영업부서는 목숨을 연장할 수 있다. 나머지는 개발팀의 몫이다. 개발팀은 저가 수주니, 인력이 없다느니, 왜 그런걸 수주했느니 남 탓하며 울어봐야 소용없다.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회사는 어떻게든 계약된 프로젝트를 마치기위해 개발팀 직원들을 쫀다. 그런 상황에서 개발팀만 죽어난다.
각자도생한다. 개발팀은 씨익 씨익 흥분하며 칼을 갈아본다. 이미 계약된 상황에서는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어렵다는 말은 '기술력이 없다'는 말로 자신을 깎아내리게된다. 인력이 없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서든 해내야 한다. 프리랜서를 쓰던지 다른 팀 인력을 끌어다 쓰던지 방법은 여러가지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해서든 프로젝트는 마쳐지고 계약은 종료된다.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는데 누가 비난의 화살을 영업팀으로 돌릴 수 있을까? 개발팀 출혈이 만만치 않다. 진행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에 일정 지연이 생긴다. 프로젝트 PM이 욕을 먹고 자진 퇴사하거나 다른 인력으로 교체되기도 한다. 출혈이 심하지만 누구도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는다. 영업팀을 불러내고 싶지만 따질 이유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미 프로젝트가 끝난 상황이데 힘들게 영업한 사람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영업팀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마 고객이 한 말을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했으리라. 뉴스나 기사는 가상현실, 메타버스를 이야기하며 마치 영화속 SF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신세계가 곧 펼쳐질 것처럼 이야기한다. 고객은 들떠있고 프로젝트를 발주한다. 하지만 개발될 결과물은 그들의 생각과 많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알까? 어지럽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어지럼증은 신체의 문제다. 영업팀에게 아무리 기술적 리스크와 한계를 설명해도 고개만 끄덕일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세요" 영업팀이 말하고 가버린다.
어째 개발팀은 매번 안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영업팀은 긍정적인 사람으로 오인한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비판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 뒷다리나 잡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찍힌다. 이럴바에야 아무말도 하지 않을 걸 그랬다며 다짐해본다. 몇 번 당하고나서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열변을 토해본다. 바뀌는 건 없다. 말은 해봤다며 팀원들을 추스른다. 힘없는 자신을 탓하며 팀원에게 미안해 한다.
여기 영업이란게 쉬운게 아니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 팔고 아프리카 사람에게 운동화를 파는 그런 세일즈가 아니다. 예전처럼 관계로 하는게 아니다. 고객에게 기술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이게 쉬울리 없다.
영업팀도 고충이다. 매번 변하는 기술에 관심은 갖지만 너무 빨리 바뀌어 따라가기 벅차다. 회사가 강제로 등록한 교육을받은들 대부분의 교육이 그렇듯 도움되지 않는다. 그들에겐 나름 생존 노하우가 있다. 관련기술이 필요하면 개발팀을 부르면 된다.
개발 관련 이슈가 있다면 개발팀을 참여시키고 고객과 미팅자리에 필요하다면 개발자와 동행한다. 어쩌면 굳이 그들이 기술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없어보인다. 개발팀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다. 그들의 업무를 돕지 않는다는 볼멘 소리를 듣기 싫어서다. 이래저래 개발팀은 영업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 번은 영업 잘하는 대기업 출신을 모셔왔다. 한때 갑으로 굴림했던 사람이라 회사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나름 능력있어 보였다. 대표가 어떻게 그를 데려왔는지 새삼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스카웃한 그는 쓸쓸히 퇴사해야 했다. 정확한 사정이야 모르지만 성과가 부진한게 가장 큰 요인이다.
수주를 못하는게 영업부장만의 탓일까? 이런 결과를 예측이라도 했을까? 왕년에 잘나가던 영업맨도 환경이 변하니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거 같다. 아니면 긍정의 탈을 쓸 수 없을 만큼 착했을 수도. 회사와 안맞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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