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에 참여해 수주해서 먹고사는 기업은 제안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안평가없이 수의계약으로 바로가는 지름길도 있지만 세상이 좋아진건지 나빠진건지 수의계약하기란 점점 어렵다. 어떻게서든지 돈을 벌려면 제안을 하고 발표해서 사업을 수주해야 한다. 회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고 최고의 제안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그 속에서 주말을 반납하고 밤을 새며 제안서를 작성하는 직원들은 고달프다.

 

발주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발주 하는 사람이 겁을 낸다. 큰 돈이 쓰여지기 위해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섣불리 개인적인 판단으로 수의계약을 했다간 후폭풍에 자리 보존이 어렵다. 일에 있어 소신은 필요없다. 특정 업체를 밀어줘선 안된다. 발주하는 사람은 어차피 자기돈 쓰는 것도 아닌데 탈없이 자리 보존하는게 최우선 과제다. 

 

회사가 수주하기 위해서 제안평가라는 관문을 지나야 한다. 평가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쓰릴 정도로 스트레스다. 학교를 벗어나면 시험에서 자유로와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세상은 점수라는 잣대로 사람, 기업, 제안을 평가한다. 점수화를 하고 수치로 열을 세우고 그 중에서 1등을 골라낸다. 

 

발주자는 평가를 통해 최고의 제안을 원한다? 글쎄 그러길 원하는 것일 뿐 제안 평가 1등이 실제 최고의 제안인지는 알수없다. 그래서 세상이 그나마 살만해진 걸까? 사람들이 믿는 공정이 작동했다면 1등만 살아남았을 테니까. 2등에겐 기회도 없는 세상이 되었을 테니까. 공정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용케 2등들이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1등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1등을 하기도 한다. 그건 공정해서가 아닌것 같다. 

 

발주자도 공정을 기한다는 빌미로 평가 절차를 만들어야해 골치아프다. 최근에 겪은 블라인드 제안평가를 보자. 평가장 도착부터 인솔요원의 지시를 받았다. 경쟁발표자는 지하에 주차를 하고 우린 지상에 주차를 해야 했다. 서로 동선이 겹치는 걸 방지한다는 이유다.

 

대기실에서 우리는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화장실 사용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화장실이 평가장 근처라 전 발표자의 소리가 들리 수 있다고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어 발표장으로 안내되었다. 

 

체온을 체크하고 전해준 손소독제를 발랐다. 참석자 명단엔 체온과 연락처를 남겼다. 발표장엔 큰 테이블이 있고 맞은편에 운영자가 앉았다. 핸드폰은 탁자위에 올려났다. 운영위원은 전원이 꺼진걸 확인했다. 녹음불가다. 누굴위한 녹음불가인지 모르겠다.

 

평가위원은 없었다. 마이크를 켜고 말을 하면 평가위원이 있는 곳에 전달된다. 평가위원이 있는 룸에서도 마이크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평가위원들은 우리를 볼 수 없다. 어떤 얼굴의 모습인지, 어떤 차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도 평가위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같은 업계에 종사한다면 우연히 아는 사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체 알 수가 없다. 제안서에도 업체명을 기입할 수 없다. 발표장에서도 업체이름을 언급해서는 안된다. 업체이름을 내뱉는 순간 감점처리 된다.

 

흔한 파워포인트도 없다. 제안서 몇 쪽이라고 이야기하며 요약된 장표를 발표했다. 굳이 서있을 이유도 없고 발표를 외울 필요도 없다. 앉아서 적어온 발표내용을 읽었다. 장표가 넘어가면 몇 페인지 꼭 이야기 했다. 

 

중요한 건 목소리다. 자신감있고 당찬 목소리. 주저함이 없어야 하고 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 평가위원과 눈을 마주치며 말할 필요도 없다. 시대를 거슬러 라디오 DJ처럼 하면된다.

 

얼굴을 보든 목소리만 듣든 평가위원이 우리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까? 전혀. 평가위원은 하루 전이나 당일 소집된다. 수박겉핥기로 제안서를 들여다 본다. 본다고 우리보다 잘 알 수 있을까? 교수나 박사라는 타이틀이 있다는 이유로 평가위원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의 지식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우연히 아는 영역이라면 모르까 보통 제안한 업무에 대해선 발표자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기꾼이 유리한다. 

 

발표가 끝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다. 사전에 전달된 질문이 있어서 준비해온 답변을 차례대로 읽었다. 다음은 실제 현장에서 나오는 질문과 답변을 할 차례다. 평가위원 룸에 있는 운영자가 위원들의 질문을 받고 대신 우리에게 전달한다. 평가위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한 장치다. 그러고보니 왜 우리는 발표자가 발표를 했을까? 여기도 운영요원이 있는데. 그들이 발표해도 되지 않을까?

 

시간이 되어 발표가 끝나고 모두들 같이 모여서 나갔다. 화장실에 단체로 들렀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인솔요원의 통제를 따라 건물을 벗어나야 했다. 평가위원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한다는 이유다. 우리가 떠나는 모습까지 인솔요원이 건물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블라인드 발표에 경쟁자와 동선을 불리하고 평가위원들과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게 했다. 공정한 건가? 어차피 경쟁자도 같은 입장이니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입장이라면 제안발표를 하지 않아도 공정하지 않을까? 제안서는 제출되었고 그 것만 가지고 평가해도 문제없을 듯 한데. 필요한건 경쟁자들간의 공정함이지 않을까?

 

블라인드로 제안 평가했다는 건 공정하게 평가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 그게 실제로 공정한지는 둘째 문제다. 얼굴과 옷차림을 보지 않고 평가했다고 공정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발표자의 목소리는 듣고 평가하지 않았나. 목소리로 부터 가질 수 있는 선입견도 무시할 수 없지않을까? 공정함을 가장해 만들어낸 꼼수에 불과해보인다. 

 

그냥 제안서만 보고 평가해주세요. 어차피 중요한 건 경쟁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지 않나. 쓸데없이 발표준비하느라 고생하지 말았으면 한다. 시험도 리포트로 대체하는걸 선호하지 않는가? 발표까지는 오버다. 발표실력으로 프로젝트 수행능력이 평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업무보고가 배포되었다. 내용 중 최근 대표이사 강조사항을 보고 깜짝놀랐다. 붉은색 글자로 따움표를 친 "사람없다, 해본적 없다, 시간 없다" 문화개선. 

 

회사가 군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사람없다, 해본적없다, 시간없다'는 상급자들이 매번 부딪치는 곤혹스러운 답변일 테다. 그런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하라고 윗자리에 있는것이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말라고 되려 직원들에게 지시사항으로 내려온단 말인가. 완전 책임회피며 직무유기다. 지시사항을 낼 수 있는 자리라고 아무말이나 막뱉으면 되는 줄 알고있는게 아닐까? 자기 편하자고 하는 말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적정 사람을 유지하고 있으니 더 이상 사람없다는 핑게대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것이다. 

 

직원들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책임감때문에 어떻게 든지 일을 성사시키기위해 현실을 보고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안 좋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이나 핑계일 수 있다. 우리가 하는 SW프로젝트는 사람이 전부다. 사람이 SW를 만든다. 경험 많고 기술좋은 사람이 있다면 프로젝트는 쉽게 끝날 수 있다. 경험 없는 신입들로 구성되었다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갈 것이 뻔하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그래서 팀장의 입에서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결론은 사람인데 관리자는 다른 결론을 원한다. 다르게 표현하라고? 

 

그럼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실력을 키우라고? 그 말은 야근이라도 해서라도 일을 하라는 거 아닐까? 엔지니어인 직원이 '나 실력없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엔지니어에게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있다. 신입이야 대놓고 나 할 수 없오라고 하지만 일정 경력이 쌓이면 쉽게 입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 특히 팀장이 되면 나 재주가 없오라고 하지 않고 사람이 없오라고 이야기 한다. 

 

사람없다, 경험없다, 시간없다라는 말은 회사에서 매번 듣는 말이며 전혀 새롭지도 않다. 푸념이나 넋두리처럼 들린다. 언제 사람이 충분하고 경험이 있었으며 시간이 널널했을까? 매번 하던 일은 어려움 투성이었고 그래도 어떻게든지 프로젝트는 끝났다. 그럼 왜 그런말을 하며 투덜됐냐고? 사람이 있고 경험이 있고 시간이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든지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니 대충 마무리하고 덮어버린 것이다. 미처리된 항목은 유지보수하는 기간으로 떠넘겨 버리고 손을 턴것이다.

 

팀장이나 상사가 모든 것을 결정해 줄 수 있는 시대는 끝이났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모두들 허겁지겁 쫓아가느라 항상 지식과 정보에 메말라한다.  결정권자는 두렵다. 혹시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을까? 팀장이나 상사는 더 이상 해결사 노릇을 하면 안된다. 직원들에게 솔루션을 가져오도록 독려해야 한다. 핑계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프로젝트를 잘 진행할 수 있는지 제시해야 한다. 사람이 없다가 아니라 무슨 기술이 있는 몇 명이 필요하다라고. 어 말하고 나니까 좀 이상하네. 결국 그 말인 즉슨 사람이 없는 거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건 직원의 판단을 무시하는 처사다. 직원의 판단을 불신하는 것다. 사람없다, 경험없다, 시간없다 라고 단순화해서 이야기를 꺼냈다면 상사는 도대체 어떻게 된 사항인지 깊이 드려다 봐야 하지 않을까? 어렵고 고충이 있어 이야기 했지만 결론을 축약해 보면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대안이 나온건데 거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 무슨 소리하라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마무리되도록 해보겠습니다'라는 걸 듣고 싶은 건가? 캬 듣기 좋은 말이다. 듣는 사람은 좋다. 말한 사람은 그걸 지키려면 죽어나겠지. 아님 어떻게 되든지 모르겠다며 말만 해놓고 손놓을건가?

 

직원들은 착하다. 회사가 그런 소리를 해도 별 반응이 없어 보인다.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리는 듯 하다. 경영자를 이해한다는 직원들. 어쩌면 경영자보다 직원들의 포용력이 더 넓어보인다. 난 이 문구에 숨이 막히는 듯 한데.

 

 

 

 

 

 

 

★★★☆☆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이 그런 가해자인 줄 모른다.'라...?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엮이면 피곤해지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과연 성가시지 않고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있는 듯 없는 듯 무색투명한 존재가 좋은 것일까요? 남을 귀찮게 하지 않지만 어쩐지 좀 무미건조한 느낌이 들진 않나요? 사람은 적당히 자신만의 생깔과 고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 어떤 부분에게 어떻게 괴집을 부리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 타입1. 초예민형

쿠크다스 같은 '그 사람' 멘탈 지키다가 내 멘탈 먼저 부서진다. 

: 대수롭지 않은 일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

 

감수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이 너무 깊고 많습니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돌변하는 직원. 

마음의 완충제가 없어 충격을 완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정 기복이 격한 사람과 같이 있어서 피곤한 이유는 바로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 영향을 받아서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주의 주려던 것인 직장 내 괴롭힘이라니.... 주의를 준 사람만 억울해지는 상황입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 내버린다. 

소싯적부터 사소한 일로 야단법석을 떨거나, 전전긍긍하는 등 뭘 해도 쉽게 상처받는 성격을 주변에 잘 드러내왔다는 점

회복 탄력성이 낮은 것과 관련.

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풀이 죽지 않게 북돋아줘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분위기가 다운되고 우울해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게 피곤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니, 가뜩이나 바빠서 여유가 없을 때는 짜증 나고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 타입2 자격지심형

세상 모든 일을 '제로섬 게임'으로 바라본다.

: 매사에 경쟁심을 불태우는 사람

 

우리는 '사실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인가 하는 내적 현실, 즉 '마음의 세계(해석된 의미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곤한 것입니다. 

모든 일을 '이기거나 지거나'의 구도로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의 성공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지 못합니다. 누군가 이겼다는 것은 본인이 졌다는 것이고 축하까지 한다면 그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적대적 귀인 편향이라는 인지왜곡. 다른 사람들의 애매한 행동을 상냥한 태도보다는 적대적 태도로 받아들이는 해석 편견.

 

누군가의 의견을 수용했다. 본인의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

 

. 타입3 부채질형

눈치를 밥 말아 먹고, 분위기도 같이 말아 먹는다. 

: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분위기를 한번에 망치는 용한 재주를 가진 사람

 

눈치도 없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등 행간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데 일일이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서툴까요?

'이 정도는 굳이 말하지 않다도 알겠지?' 애써 확인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알아서 했겠지. 하는 일이 이런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것을 정말 전혀 모르는 거죠.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문화. 

유럽과 미국처럼 언어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맥락도가 낮은 문화의 특징.

고맥락 문화란 사람들이 공통의 문화적 맥락을 갖고 있어서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통하는 문화. 공감능력이 높기때문.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원인인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모든 언행은 본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고 상대방의 욕구 충족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 타입4. 쭈구리형

쓸데없이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산다. 

:자기 방어 의식이 매우 강해서 불필요한 변명이 많거나 몸을 사리는 사람.

 

자기 불구화. self-hadicapping. 

만일 실패하더라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려고 미리 본인에게 어떤 문제나 장애가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

(실패했을 때에 받을 상처를 최소화하려고)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험한 선을 넘지 않고 매사에 몸을 사리는 사람은 성공추구 동기보다 실패회피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적극적인 행동을 기대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은 주변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

 

.타입5. 내로남불 형

다른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맞다고 떠든다. 

: 본인 나름의 정의감에 비춰봤을 때,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있으면 '용서할 수 없다.'며 공격하는 사람

 

자신이 보이는 것과 볼 수 있는 것만 놓고 자신의 눈높이와 기준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비난해버린 상황.

 

본인의 정의감으로 무장한 이런 타입들은 부정의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일단 '아니'부터 하면서 말을 시작하는 사람들.

본인이 생각하는 게 일단 맞는 것이고, 상대방의 생각은 부인하고 보죠.

 

자신=정의의 사도. social justice warrior

사회나 조직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싶다는 자기 나름의 정의감에 불타올라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인물 및 조직, 제도 등에 철저하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착각하고 정의의 편이라고 믿는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 불과합니다. 

 

메시아 콤플렉스messiah complex. 

무의식 속에 '자신=구세주'라는 생각이 있어 필요 이상으로 타인과 사회 혹은 조직을 구하려고 하는 심리. 

 

본인은 정의감에 불타올라 행동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열등감과 일그러진 우월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이기 쉽습니다. 

 

.타입6 절차집착 형

모든 일에 유도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 순서나 규칙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사람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자신이 없는 것이죠.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는 불안.

논리력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자신감이 없기에 매사에 절차를 들이대는 것

 

특히 더 짜증 나는 사람들. 논리력과 발상력, 기획력을 갖춘 사람들.

 

.타입7 어리광쟁이 형

사람들의 관심이 나를 감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 칭찬을 못 받으면 의욕을 상실하는 타입.

 

2가지 패턴

공감과 수용의 상호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자존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거죠.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타인의 칭찬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패턴

본인은 특별하다는 의식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나 타인에게 과도한 칭찬을 요구

 

치켜세우지 않으면 삐쳐버리는 타입이라서 누군가가 본인을 치켜세워주는 행동에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편애가 심하기도 하죠.

 

부하직원이 자기를 필요로 하고 '과장님이 안 계시면 안 돼요!' 하는 상황을 남들보다 즐기는 거지.

 

누군가가 본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주 큰 심리적 보상.

 

. 타입8 겸손 진상형

듣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고 못 들으면 서운해 죽는다.

: 배려와 이해심은 일종의 미학이지만 이것도 도가 지나치면 피곤해집니다. 

 

굳이 무능함을 떠벌리는가

격려와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죠.

 

. 타입9. 구구절절형

그래서 뭔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소리가가 절로 나온다.

: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이 장황하기만 하고 요점은 없어서 짜증나는 사람

 

이야기가 너무 세세합니다. 그것도 불필요하리만큼 너무나 자세합니다. 

의도와 정반대로 너무 장황해서 요점을 파악할 수 없어집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은 뭐든지 다 늘어놓습니다.

 

.타입10. 라떼 빌런형

과거이야기 안 꺼내고는 대화가 안된다. 

:조직이라는 공적인 굴레가 사라졌는데도 더 꼴사납고,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

 

인간의 가치를 오로지 직함으로 판단.

 

 

5가지 타입. 슈프랑거

. 이론형

이론적으로 결함이나 모순이 없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

이치가 통하는 않는 사람, 이론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될 때 강한 불만

융통성이 없는 답답한 사람, 인간미 없는 냉철한 사람, 유머 감각이 부족한 따분한 사람

 

. 정치형

세상만사를 지배-피지배의 구도로 바라봅니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 가치. 

권력욕이 강하고 본인의 힘을 항상 실감하고 싶어 합니다. 

남을 조정하거나 조직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본인의 뜻대로 사람과 조직을 움직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죠.

자신에게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 사회형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을 도와주며, 마음을 나누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타입. 사랑과 정에 가치.

정치형이나 경제형에 강한 반발심.

자칫 잘못하면 감정에 이끌린 질척한 인간관계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고독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 

상대방이 이들의 관심을 간섭처럼 느껴서 답답해할 수도

 

. 심미형

미적 체험과 미의 구현에 가치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는 생각이 강하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보다 감정과 감각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고,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남들 눈에는 낭비처럼 보이는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기도 합니다. 

실용적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취미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이 타입의 특징. 인생을 즐기는 데 아주 집착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도 

현실의 복잡한 문제나 인간 관계에 엮이는 것을 필사적으로 피하는데, 이런 태도가 때로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냉정함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경제형

현실적인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경제성이나 실용성에 가치. 매사에 '이게 나에게 도움이 될까?' 이해하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두거나 만족하려고 하지 않음. 그것을 배워서 현실에서 어떤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

실용성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

세상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측면.

정치형 처럼 이해타산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측면은 순수하게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려는 이론형과 남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회형, 물질적인 것에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꺼리는 심미형의 반발을 사기 쉽다.

 

 

자기 모니터링 성향

타인의 언행이 갖는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해독 능력). 타인의 반응을 살피면서 본인의 언행이 적절한지 파악

본인의 언행을 조정하는 능력(자기 조정 능력). 본인의 언행을 상황에 적합한 방향으로 조정. 

 

머릿속에 각인된 ... 해야 한다. .. 이어야 한다 라는 문장을 

... 해주면 좋겠다(고맙겠다), ... 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모두 나름의 생각이 있고 삶의 방식이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 

 

그동안 피곤하게 느껴졌던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서 짜증이 줄고 관용적일 수 있게 되었다 든가

내가 어떤 사람을 피곤하게 여기는지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오히려 나의 약점과 편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면 더 큰 바람은 없을 것입니다. 

 

 

 

 

 

제품개발보다 용역을 주로하는 회사다 보니 제안서를 자주 쓰게된다.

 

개발자에게 제안서를 쓰라고 하니 죽을 맛이다. 개발만 하기도 바쁘데 웬 제안? 제안서 잘쓴다고 표시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잘쓰게 되면 계속 제안서 업무가 올 것같아 이래저래 고민이다. 

 

신입사원들은 제안서에 대한 감이 없다. 당연히 회사에서 필요한 업무인가 보다 생각한다. 회사는 회사에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배울 수 있고 그 중 하나가 제안작성이라고 자랑스럽게 신입에게 이야기 한다. 무엇이든 배우면 좋다고 생각하는 신입은 제안서쓰는 걸 배울 수 있다고 좋아한다.

 

회사에서 몇 년을 일하게 되면 제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제안은 피해야 되는 일이다. 잘해도 본전도 못 건진다. 제안에 떨어지면 죄인이 된 심정이다. 제안이 된다고 좋은 일은 없다. 며칠 기분 좋다가 만다.  

 

회사는 제안서 잘쓰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글 잘쓰는 개발자는 찾기 어렵다.

 

개발자는 코딩뿐 아니라 메뉴얼을 작성하고 개발문서, 커뮤니케이션으로 글쓰기를 많이한다. 그런다고 글쓰는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다. 개발자의 글쓰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타이트한 글쓰기가 아니다. 의미만 전달하고 있다.

 

요구사항 문서 작성부터 개발 위키에 작성된 글을 보면 주어랑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등 자잘하게 말이 안통하는 글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다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건 아니다. 모두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토시 하나 틀렸다고 누가 읍박지를까? 무얼 말하려는지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 자잘한 거에 신경쓸겨를이 없다. 대신 버그없이 동작하는 소프트웨어에 온통 신경쓴다. 

 

제안서는 공식적인 문서로 평소에 작성하는 문서와는 다른다. 신경써야 될께 많다. 내용뿐 아니라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 그림과 표가 들어가고 설득력이 있어야 된다. 너무 상세해도 너무 간단히 해도 않된다. 내용의 상세정도를 조절해야 한다. 즉 답이 없다. 제안서를 검토하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제안서 작성능력이라는게 뭔지 애매해진다. 제안서는 제안마감이 작성한다. 마감날짜가 다가오면 저절로 어떻게든 작성된다. 제출이 우선이니까.

 

회사에 제안서만 전담하는 조직은 없다. 일이 있을때 마다 TF처럼 사람을 모은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돌이 개발자들에게 제안서 작성업무를 들이민다. 하던 일이 있던 없던 게의치 않는다. 모두다 일있는 사람이라며 참여를 명한다. 몇 주 동안 하던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망하진 않는다. 지연될 뿐. 그렇게 모인 직원들은 제안의 목적을 제출에 둔다. 수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 

 

제안팀에 끌려온 팀원들은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거다라고 항변한다. 정작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장만 애가탄다. 팀원들이 빠져나가 스케줄에 구멍이 났기때문이다. 팀장은 속이 쓰리지만 어쩔 수 없다. 회사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감내한다. 

 

회사는 수주를 하고 돈을 벌려면 제안서를 잘써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행동은 반대다. 개발자 역량을 평가한다며 코딩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코딩테스트 결과를 인사평가에 반영한다며 테스트 받으라 종용한다. 제안작성능력은? 그런거 평가하는거 없다. 제안서 작성 참여도를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제안서 작성 역량은 측정할 수 없는 거로 보인다. 

 

제안서 작성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고 해서 코딩테스트만 하는게 옳을까? 직원이 제안서보다 코딩 역량을 중요하게 생각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사가 제안서 작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모두다 알고 있다. 코딩이 중요하다.  개발능력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거다. 제안? 글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새로오신 상사가 있다. 나름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지만 정치는 잘 못했던지 진급 경쟁에서 밀려나 우리 회사로 왔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분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박식하고 프로젝트가 어떤 개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할 줄 아는 분이다. 그런 그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 왔는지 모르지만 난 그의 존재에 기대가 있었다. 그가 경영진으로부터의 방패막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며 회사의 규율을 잘 따르고 있다. 본인이 비록 큰 곳에 근무하다가 왔지만 이 곳의 규칙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나름의 문화가 있을꺼고 그 문화를  존중하고 따르겠다고 했다. 실망이다. 어떻게든지 그로인해 회사가 새롭게 바뀌기를 기대했는데.

 

그가 이 곳에 처음 부임해 팀원들과 회의를 가졌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본인이 다녔던 곳을 이야기했고 이 곳의 시스템에 대해서 물었다. 직원들도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한 점에 대해서 물었다. 그가 있던 곳은 연봉인상을 어떻게 했으며 채용, 업무분배, 진행 등 직장인이라면 가질만한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눴다. 마치 우물안 개구리들이 밖에 다녀온 이에게 바깥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을 듣는 자리같았다. 

 

그의 당찬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부분은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무언가 행동이 있을꺼라 믿었다. 

 

그의 당찬 소리는 그냥 하는 소리가 되었다. 아직까지 그가 힘쓴 부분은 없다. 회식이 필요하면 법인카드 빌려준다는 얘기만 여러번 들었을뿐. 코로나로 회식도 못하는 지금 그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얼마나 오래 근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작정하고 은퇴할때까지 조용히 지내는 전략인지는 모르겠다. 

 

대표는 그에게 과업을 맡겼다. 그가 있기 때문에 과업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추진하라 명했다. 

 

그는 사내 메신저에 그룹을 만들고 대표이사도 포함시켰다. 그건 그의 실책이 되었다. 대표이사를 포함시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있는지 어필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그가 공개적으로 성토당하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그는 나름대로 맡은 업무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고 개발대비 효과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서는 안되는 손해보는 프로젝트라 결론냈다. 시장은 거의 없고 개발비는 산떠미처럼 크고 인증 작업도 만만치 않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 판단했다. 회사를 생각해서 분석하고 보고했지만 대표에게 엄청 까였다. "시장이 없다는거 힘들다는거 다 알고있습니다. 어떻게 개발할지에만 신경써주세요. 시장 상황을 극복하는게 혁신기업의 정신입니다" 대충 대표가 한 말의 요약이다. 느낌은 '엉뚱한 소리하지말고 연구개발에만 신경쓰세요'다.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어느 날 나까지 TF팀 메신저에 추가되어 보게되었다. 메신저에 추가되면  추가된 다음부터 올려진 내용을 볼 수 있는게 아니라 과거에 올려진 자료도 다 볼 수 있었다. 대표가 한 소리 하는 문자도 그렇게 보게 되었다. 모두가 다 보는 공간에 대표가 올린 문자다. 상사의 체면도 있지. 순화된 착한 글로 적혀있지만 속내는 모두 다 읽을 수 있다. 

 

그가 아직 대표의 성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가 무언가에 꽂히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고 해도 '뭘래 좋은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이 못 알아본다'고 생각하는지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을 이기려 든다. 그걸 아는 사람은 굳이 애써서 대표와 대화하지 않는다. 그냥 듣고만 있다가 대표가 시키는 일만한다. 

 

그는 메신저에 다른 팀원을 끌어들였다. 자신의 생각를 다른 사람과 공유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기말에 공감해 달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회사 메신저에서 지식을 공유하면 일이 줄지 않고 업무가 늘어나는걸 모르나.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대표가 들어있는 단톡방에 누가 함부로 자기 의견을 낼까? 좋은 이야기만 적어야 한다. 

 

혁신을 부르짖는 대표에게 어떤 이야기가 통할까? 어떤 변병도 이유도 있어서는 안된다. 대표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방법이 없다. 언젠가 조용히 흐지부지 사라질때까지 견디는게 상책이다. 

 

그도 이제 회사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처음에 그랬던거처럼 로마의 법을 잘 따르려고 한다. 회사의 벽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는 길을 택한거로 보인다. 희망하나가 사라졌다.  

 

 

 

  

 

 

업무의 효율보다 위에 있는 회사보안을 이야기 한 적있다. 보안이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보안이랄꺼도 없는데 보안이라면서 호들갑을 떠는게 안타까워서다. 다른 곳은 중국이나 경쟁 회사에 기술이 넘어가면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런다손 치더라도 여긴 아니지 않는가. 문 열어놔도 돈되는 기술을 가지고 나갈께 없다. 

 

어디서 배워오는지 보안정책은 나날이 발전한다. 개발 기술이나 스타트업 문화, 자율적인 회사문화를 도입하고 개선할 생각은 안하고 매번 엉뚱하게 도움안되는데 기운을 낭비하고 있다. 보안팀장이 일 열심히하고 있다고 티내려고 하는 건가? 열성적인 한 사람으로 여럿이 피해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보안 정책 중 이해안가는게 하나있다. 개인의 스마트폰은 반입해서 사용해도 된다고 하면서 개인용 아이패드, 갤럭시 패드는 사내 반입금지라고 한다. 다른 곳에서 이런 식으로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걸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패드나 화면크기만 다르지 똑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인거 모르나? 차이를 모르거나 패드를 쓰는 직원이 샘나서 그런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대기업처럼 회사 출입할때 스마트폰에 카메라 스티커는 아직 달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이 지금은 개인용 노트북 버금가는 수준이다. 보안 정책을 한다면서 개인용 스마트폰은 괜찮다고 하다니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보안하고는 전혀 상관없어보인다. 사내에서 개인용 패드나 노트북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으로 살테고 너도 나도 들고 다닐까봐 그러는게 아닐까?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써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사람마다 다른데 꼭 평등한 조건에서 일해야 되다는 회사의 평등 주의인가? 패드로 업무성과를 높이면 치팅이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다른 사람 잘 되는걸 못보는 심보아닐까?

 

보안팀은 업무에 필요하면 쓸수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뭐라도 사용할라 치면 보안 프로그램을 깔으라고 한다. 짜증나서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다. 업무를 잘하려고 하는 직원의 의욕을 꺾어놓는다. 누구를 위한 보안인까?

 

회의실 중 하나는 보안 전용 회의실로 만들었다. 대표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그 곳에 들어갈때면 스마트폰을 밖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 회의실안에 있는 전용 컴퓨터만 쓸 수 있다. 개인들은 필요하면 노트에다 손으로 필기한다. 재밌지 않은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대단한 기획을 하거나 혁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 누출되면 큰일인 경우 그럴 수 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지금껏 가슴뛰게 하는 어떤 기획도 없었다. 현실성없는 기획에 매번 긍정으로 임하고 결국 조용히 사라졌다.     

 

보안으로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잃고있다는 생각이다. 나부터도 보안때문에 짜증나고 자유롭게 연구하는 스타트업이 부럽다. 검색할때 마다 보안때문에 막힐때면 욕나오고 스트레스 쌓인다. 네이버는 로그인 안되고 티스토리나 미디엄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아니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안되나? 이야기하면 나만 풀어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말하기 싫다. 차라리 성과나지 않는 핑계로 쓰련다. 

 

보안 그까지껏 마음만 먹으면 다 빼올 수 있다. 코드를 못가지고 나오면 코드를 사진찍어서 조금씩 가지고 나오면 된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보안으로 사람의 마음을 막는건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하수나 하는 짓이라 본다. 직원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옛날에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듯이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보안을 하지 말라는게 아니다. 그 보안을 하는 정당한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뭐라도 대단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개발했으면 이해한다. 대박날 아이템을 하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면 납득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보안한다고 호들갑떠니 그게 안타까울따름이다. 

 

 

 

"머리 속에 있는 걸 쏙 다 빼먹어야 해! 가르쳐달라 그래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라구!" 상사가 후임사원에게 지시했다. 옆에 같이 있는 선임사원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상사가 후임이 알아듣기 쉽게 비유를 들어 설명했을 테다. 빼먹으라는 표현을 썼지만 우스게소리로 한 것이다. 본 뜻은 선임의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을 다 배우도록 노력해라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후임이 선임의 지식을 빼간다고 해서 선임의 지식의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지식이 전달될 수 있을까? 가능하기나 할까?

 

내가 만약 선임이라면 무엇을 어떻게 후임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글쎄, 가르쳐 줄만 한게 딱히 없다. 내가 SW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인터넷에서 소스코드 받아 짜집기 한다. 라이브러리 사용방법도 구글링해서 알아낸다. DB사용 방법도 티스토리 같은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프로그래밍하는 방법도 유튜브로 실제 코딩을 볼 수 있다. Github에 가면 널려있는게 소스코드다. 과연 내가 뭘 가르쳐줄 수 있지? 어디에 좋은 자료가 있는지 가르치라고?

 

인터넷에는 어느 사이트가 좋은지 어떤 책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나와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기술은 후임에게 가르쳐 줄만 한게 못된다. 더 새로운 좋은 기술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데 올드한 기술을 배워 뭐하겠는가? 내게 질문을 한들 나 또한 인터넷을 찾아봐야 한다. 후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인터넷 써치 해가면서 천천히 배워나가라'는 말 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줄께 없다. 

 

후임보다 선임이 잘하기는 하지만 그건 경험에서 나오는거지 가르쳐서 전달될 수 있는게 아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열심히 계속 프로그래밍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코딩을 맞게 하고 있는지는 컴퓨터가 말해준다. 잘못하게 되면 에러가 발생하고 버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짠게 성능이 안나올 수 도 있다. 그런다고 선임이 가르쳐준다해서 후임의 지식이 되는건 아니다. 태스크 하나가 해결될 뿐이다. 말처럼 선임의 머리에 있는 걸 쏙 빼서 줄 수 있는게 아니다.

 

가르쳐줄게 없다는 말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선임이 직장에서 살아온 삶이 얼만데 가르쳐줄게 아예 없지는 않다. 일하는 요령이나 상사를 다루는 방법같은 직장생활에서 유용한 자잘하고 소소한걸 가르쳐줄 수 있다. 하지만 상사가 바라는 기술의 전달은 말처럼 되는게 아니다. 

 

본부장은 최근 퇴사한 직원의 일 때문에 부하직원을 2명씩 짝지어서 서로 업무를 공유하면서 일하라 지시했다. 한 명이 퇴사하더라도 업무에 지장가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새롭지도 않다. 난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렸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는 지시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어 있다.

 

백업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람을 백업할 수 있을까? 후임이 선임을 백업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빼먹으라는 상사의 지시는 배움의 책임을 후임에게 지웠다. 후임을 가르치라고 선임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선임에게 배우라고 후임에게 책임을 지웠다. 선임은 가르칠 의무가 없지만 후임은 배울 의무가 있다는 건가? 책임의 주체는 중요하다. 책임이 있는자가 애가 닳기때문이다. 선임에게 면죄부를 줬다.

 

후임은 배워야 된다는 사실을 안다. 선임보다 부족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후임은 드라마처럼 선임에게 음료수를 갖다주며 아양을 떨고 선임을 사부대하듯 굽신거리며 일취월장하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후임도 나름 성인이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상사가 후임에게 푸쉬하고 책임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후임이 만만해서 그런건 아니었으면.

 

 

 

 

 

회사엔 청소해주시는 아줌마가 계신다. 어머니뻘의 나이다. 직원들은 2주에 한 번 근무하는 주변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지만 그 외는 청소 아줌마가 맡아서 하신다. 화장실부터 복도, 회의실 등 매일 청소하신다. 

 

아파트에도 청소해주시는 분이 있다. 가끔 엘리베이터나, 계단 난간을 닦는 모습을 본다. 난 못 본체 하고 지나간다. 모르는 사람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들지만 마음 한 구석엔 '수고하십니다'라고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미안함이 있다. 그들에게 나름 사정이 있을꺼라 생각된다. 내게 돈줄테니 청소하라 하면 난 못할 것같다. 

 

회사의 청소 아줌마는 내게 먼저 아는 체 한다. 난 받아준다. 몇 년째 계속 청소일을 하셔서 직원들 대부분 아신다.  단순히 청소만 하시는게 아니라 가벼운 말을 서로 전한다. '걸레빨아 놓았다'며 업무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누가 쓰레기통에 음식물을 넣었냐'며 범인을 찾을때도 있다. 나름 성격이 좋으신 분이다. 직원들도 좋아한다. 

 

아줌마는 지금 하시는 일을 정말 좋아서 하는 듯 하다. 자식뻘되는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도 나눈다. '코로나로 제사 안 지내 편하다'고 개인적인 일도 말한다. 엄청 친하진 않지만 서로 알고 지내고 같이 회사에 근무하는 사이다. 문제는 화장실이다.   

 

화장실에서도 마주친다. 아줌마는 청소를 하시고 난 볼 일을 본다. 아줌마는 꺼리낌 없이 인사를 건넨다. 난 '예'라고 아주 작고 짧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어진다. 떳떳한 그녀에 비해 난 죄인이 된 심정이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불편함인지 모르겠다. 예전엔 화장실에서 아줌마가 청소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 어색해야 맞는 것이다. 

 

청소 아줌마에게 '청소하실 때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말하면 될텐데 난 못하겠다. 아니면 경영팀에 말해 아줌마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그 것도 못하겠다. 선한 아줌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다른 누군가가 말하겠지라며 버티고 있다. 여전히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걸보면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화장실이지만 나를 보고 반가워서 인사를 나눈건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아줌마에게 말로 상처주기는 싫다. 이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의 문제다. 화장실에 들어가기전 아줌마가 청소 중인거 같으면 다른 층으로 간다. 그런 불편은 감수한다. 가끔 볼일보는 중 갑자기 화장실로 들어오거나 화장실칸에서 갑자기 나올때는 어쩔 수 없다. 그땐 애써 태연한척 행동한다. 불이나케 도망가면 나의 불편함을 눈치챌 것 같아서다.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 감당할만하니 그렇게 하는 거다. 누구는 아무렇지 않게 요구사항을 전달하지만 난 이런 분야는 말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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