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에 참여해 수주해서 먹고사는 기업은 제안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제안평가없이 수의계약으로 바로가는 지름길도 있지만 세상이 좋아진건지 나빠진건지 수의계약하기란 점점 어렵다. 어떻게서든지 돈을 벌려면 제안을 하고 발표해서 사업을 수주해야 한다. 회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고 최고의 제안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 그 속에서 주말을 반납하고 밤을 새며 제안서를 작성하는 직원들은 고달프다.

 

발주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정 금액 이상이 되면 발주 하는 사람이 겁을 낸다. 큰 돈이 쓰여지기 위해선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섣불리 개인적인 판단으로 수의계약을 했다간 후폭풍에 자리 보존이 어렵다. 일에 있어 소신은 필요없다. 특정 업체를 밀어줘선 안된다. 발주하는 사람은 어차피 자기돈 쓰는 것도 아닌데 탈없이 자리 보존하는게 최우선 과제다. 

 

회사가 수주하기 위해서 제안평가라는 관문을 지나야 한다. 평가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쓰릴 정도로 스트레스다. 학교를 벗어나면 시험에서 자유로와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세상은 점수라는 잣대로 사람, 기업, 제안을 평가한다. 점수화를 하고 수치로 열을 세우고 그 중에서 1등을 골라낸다. 

 

발주자는 평가를 통해 최고의 제안을 원한다? 글쎄 그러길 원하는 것일 뿐 제안 평가 1등이 실제 최고의 제안인지는 알수없다. 그래서 세상이 그나마 살만해진 걸까? 사람들이 믿는 공정이 작동했다면 1등만 살아남았을 테니까. 2등에겐 기회도 없는 세상이 되었을 테니까. 공정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용케 2등들이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1등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1등을 하기도 한다. 그건 공정해서가 아닌것 같다. 

 

발주자도 공정을 기한다는 빌미로 평가 절차를 만들어야해 골치아프다. 최근에 겪은 블라인드 제안평가를 보자. 평가장 도착부터 인솔요원의 지시를 받았다. 경쟁발표자는 지하에 주차를 하고 우린 지상에 주차를 해야 했다. 서로 동선이 겹치는 걸 방지한다는 이유다.

 

대기실에서 우리는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화장실 사용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화장실이 평가장 근처라 전 발표자의 소리가 들리 수 있다고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어 발표장으로 안내되었다. 

 

체온을 체크하고 전해준 손소독제를 발랐다. 참석자 명단엔 체온과 연락처를 남겼다. 발표장엔 큰 테이블이 있고 맞은편에 운영자가 앉았다. 핸드폰은 탁자위에 올려났다. 운영위원은 전원이 꺼진걸 확인했다. 녹음불가다. 누굴위한 녹음불가인지 모르겠다.

 

평가위원은 없었다. 마이크를 켜고 말을 하면 평가위원이 있는 곳에 전달된다. 평가위원이 있는 룸에서도 마이크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평가위원들은 우리를 볼 수 없다. 어떤 얼굴의 모습인지, 어떤 차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우리도 평가위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같은 업계에 종사한다면 우연히 아는 사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체 알 수가 없다. 제안서에도 업체명을 기입할 수 없다. 발표장에서도 업체이름을 언급해서는 안된다. 업체이름을 내뱉는 순간 감점처리 된다.

 

흔한 파워포인트도 없다. 제안서 몇 쪽이라고 이야기하며 요약된 장표를 발표했다. 굳이 서있을 이유도 없고 발표를 외울 필요도 없다. 앉아서 적어온 발표내용을 읽었다. 장표가 넘어가면 몇 페인지 꼭 이야기 했다. 

 

중요한 건 목소리다. 자신감있고 당찬 목소리. 주저함이 없어야 하고 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 평가위원과 눈을 마주치며 말할 필요도 없다. 시대를 거슬러 라디오 DJ처럼 하면된다.

 

얼굴을 보든 목소리만 듣든 평가위원이 우리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까? 전혀. 평가위원은 하루 전이나 당일 소집된다. 수박겉핥기로 제안서를 들여다 본다. 본다고 우리보다 잘 알 수 있을까? 교수나 박사라는 타이틀이 있다는 이유로 평가위원 자리에 앉아있다. 그들의 지식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우연히 아는 영역이라면 모르까 보통 제안한 업무에 대해선 발표자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기꾼이 유리한다. 

 

발표가 끝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다. 사전에 전달된 질문이 있어서 준비해온 답변을 차례대로 읽었다. 다음은 실제 현장에서 나오는 질문과 답변을 할 차례다. 평가위원 룸에 있는 운영자가 위원들의 질문을 받고 대신 우리에게 전달한다. 평가위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도록 한 장치다. 그러고보니 왜 우리는 발표자가 발표를 했을까? 여기도 운영요원이 있는데. 그들이 발표해도 되지 않을까?

 

시간이 되어 발표가 끝나고 모두들 같이 모여서 나갔다. 화장실에 단체로 들렀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인솔요원의 통제를 따라 건물을 벗어나야 했다. 평가위원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한다는 이유다. 우리가 떠나는 모습까지 인솔요원이 건물앞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블라인드 발표에 경쟁자와 동선을 불리하고 평가위원들과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게 했다. 공정한 건가? 어차피 경쟁자도 같은 입장이니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입장이라면 제안발표를 하지 않아도 공정하지 않을까? 제안서는 제출되었고 그 것만 가지고 평가해도 문제없을 듯 한데. 필요한건 경쟁자들간의 공정함이지 않을까?

 

블라인드로 제안 평가했다는 건 공정하게 평가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 그게 실제로 공정한지는 둘째 문제다. 얼굴과 옷차림을 보지 않고 평가했다고 공정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발표자의 목소리는 듣고 평가하지 않았나. 목소리로 부터 가질 수 있는 선입견도 무시할 수 없지않을까? 공정함을 가장해 만들어낸 꼼수에 불과해보인다. 

 

그냥 제안서만 보고 평가해주세요. 어차피 중요한 건 경쟁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지 않나. 쓸데없이 발표준비하느라 고생하지 말았으면 한다. 시험도 리포트로 대체하는걸 선호하지 않는가? 발표까지는 오버다. 발표실력으로 프로젝트 수행능력이 평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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