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요청한 팀장은 아직 대표와 면담을 갖지 못했다. 대표에게 면담 의사를 보냈지만 대표는 거부했다. 대표가 팀장을 마주하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꼴이다. 마치 빚쟁이를 피해서 숨어다닌다고나 할까. 대표는 왜 모양빠지게 그렇게 하는 걸까?
팀장은 한 달 전부터 퇴사 의사를 밝혔다. 본부장과는 서너번 면담을 가졌다. 이미 퇴사 후 갈 곳이 정해진 팀장은 본부장에게 설득될리가 없었다. 팀장의 마음은 이미 나가기로 굳혔다. 10년 이상 근무한 직장을 떠나기로 한 팀장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무도 그런 건 이해하지 못한다. 조직을 배신했다는 프레임을 씌우려고만 든다.
팀장은 오래전에 한 번 퇴사를 시도하다 번복한 적이 있다. 그때는 팀장이 아니었다. 개발 잘하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회사에서 매너리즘을 느꼈는지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퇴사의사를 밝혔다. 갈 곳도 정해저 있어 나가는 줄 알았다. 누구도 만류하지 못했는데 대표와 면담을 한 후 번복되었다. 연봉이 인상되었다는 후문이다. 이직 하려는 직장도 지금과 같은 중소기업이라 그에게 크게 메리트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 팀장이 이직 하려고 하는 곳은 대기업이다. 예상대로 복지도 훌륭하다. 자녀들의 학자금도 지원해 준단다. 연봉도 높아지고. 지금과 비교해 하나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사람사는 곳이 다 똑같다지만 대기업을 경험해 보지 않은 팀장에겐 엄청난 기회다. 코딩테스트를 2번이나 보고 합격을 했다고 하니 무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팀장이 팀장 자리에 오른지는 한 3년 정도 된 듯하다. 회사에서 대우도 잘해줬다. 모든 직원이 그를 우수사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본인은 올해들어 매우 힘들어했다.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자리였다. 사람 뽑아달라고 말했지만 겨우 신입사원 몇 명만 받았다. 제품 개발에 매진해야 했지만 프로젝트 지원하느라 정작 개발엔 소홀해질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엔 밑에 있던 개발 핵심 인력이 퇴사해렸다. 팀장은 그가 나가면 안된다고 의견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퇴사이유는 연봉이였지만 회사는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직원은 여러차례 자신의 연봉이 다른 사람보다 낮다며 매년 인상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인상은 되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차이라면 몇 백만원일테지만 회사는 그런 그의 요구에 휘둘리기 싫었을 것이다. 핵심인력이 나가자 팀장의 마음이 흔들렸던 모양이다. 더 이상 회사에 대한 정은 없어졌다.
본부장은 팀장에게 무엇이 불만인지 물었지만 팀장인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퇴사 처리만 해달라고 줄기차게 이야기 했다. 취직한 곳에 입사날짜가 정해진 마당에 더 이상 회사에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이제 떠날 사람인데 불만을 제기한들 무슨 소용일까? 연봉인상, 업무여건 개선 등 어떤 것도 그를 남아있게 할 수는 없다.
'있을때 잘하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미 마음이 돌아선 사람을 돌리기는 어렵다. 불만이 누적되고 개선은 일체 없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회사는 힘들다는 그의 말을 겉으로 들었다. 설마 그가 퇴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나도 그의 퇴사가 믿기지 않는다. 팀장은 겉으론 아무런 이상이 없는 듯 하면서 뒤로는 꾸준히 퇴사 준비하고 있었다. 인수인계 문서도 잘 정리해 놓았다.
회사에서 직원을 파트너라고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을'의 자리다. 월급주는 사람에게 대놓고 의사표현도 못하고 휘둘리기 일상이다. 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용주는 언제든 을의 퇴사를 감당해야 한다. 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공격 수단이 퇴사니까. 팀장의 퇴사는 강력한 한 방이다. 아니 니가? 라면 뒷목을 잡아도 이젠 늦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어보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 지금 팀장의 귀에는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제발 평화롭게 나갔으면 한다.
회사는 어디로 가는지 말하라고 팀장에게 읍박질렀다. 그 곳에 공문을 날리겠다고 했다. 인수인계를 두세달 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취업을 방해해 단념하게 만들려는 심상인듯하다. 회사는 무엇이 두려운가? 경쟁회사에 가지도 않고 회사에서 연구한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다는데도 말해도 믿지 못한다. 그 동한 퇴사한 인력이 경쟁회사에 간적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팀장은 친구인 법무사에게 법적 자문을 구했다. 친구의 답변은 법적으로 회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했다. 대표이사의 결재가 없다고 퇴사를 못하는건 아니라고 한다. 팀장은 퇴사의지를 밝히고 인수인계도 다했다는 증거를 챙겼다. 혹시라도 모를 회사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팀장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후에 이직한 회사에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봐 불안해 한다. '을'은 회사를 벗어나도 눈치를 봐야하나.
웃으면서 보내준다면 다시 올 수 도 있는 확률이 있을텐데. 아주 정을 끊을 심산인가보다. 여전히 업무적으로 모르는 일이 있으면 전화연락도 해야 할텐데 남아서 일을 계속해야 하는 직원들만 새우등 터진다. 회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방향 사고를 가지고 있다. 다들 알고있는데 대표만 모르고 있는건가. 우린 배민처럼 슬로건을 걸지 못할까? 평생직장 따윈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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